획으로 쓰는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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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t Marking Machine 1899 미국
이 장치로 한글이나 한자를 쓸 수도 있을까.
ⓒThe Office Museum



몸에 잘 맞는 옷 한글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라는 책은 한글이 우리말의 소리에 최적화되도록 만들어진 흔적을 몇 가지 소개한다. 예를 들어 양모음 음모음의 형태같은 것이 그렇다.

한글은 우리말 발음의 특징을 반영해..
우리말이나 일본어같은 알타이어계열에는 '모락모락'이나 '무럭무럭'같이 모음조화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들이 많다. '모럭모럭'이나 '무락무락'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그것은 양극의 모음을 반복해 소리내면 입의 움직임이 힘들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ㅏ와 ㅓ, ㅗ와 ㅜ가 구강의 구조상 정반대에 위치하는 발음이라는 것을 그 시대에 이해하고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우선 놀랍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문자 디자인에 이를 반영하여 직관적인 형태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이를 대중에 반포하여 사용까지 하는 그 과정은 보면 볼 수록 신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알타이어계열 모음의 특징이 고스란히 설계에 반영된 한글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반짝 아이디어가 아님에 틀림없다. 숙성된 '소리의 디자인'인 것이다.

동국정운(東國正韻)서문
신숙주는 동국정운(東國正韻) 서문에서 각국의 발음은 지리적 환경, 사람의 기질, 호흡, 발성의 순으로 각각 영향을 주어 결정되므로 자연이 중국과 다른 우리는 우리 문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이 한글이나 다른 어떤 문자도 그가 묘사하는 말의 특징에 따라서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은 합리적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글이 말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그 글을 입력하는 입력방식도 글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 혹시 합리적인 것은 아닐까. 문자의 체계가 전혀 다른데도 일률적인 하나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혹시 과거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했던 이두나 향찰같이, 혹은 현재 동남아에서 자신의 문자가 없어 로마자로 자국의 언어를 표기하는 것 같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은 아닐까? 


어느 문자사회의 선택 QWERTY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모두가 쓰고 있는 이 키보드라는 물건은 다들 짐작하다시피 타자기로부터 그 형태가 유래되었다. 그리고 그 타자기라는 물건은 지금으로부터 백 여년 전인 1880년대 후반 미국 뉴욕 인근의 한 마을에서 개발되었다. 

1880년대의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활기를 띄며 발전하던 시기였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철도도 여기저기 놓이고 수많은 진기한 신문물들이 쏟아져나오던, '20세기'를 꽃 피울 준비를 하고있던 때였다. 이 후 수 십년간 미국에서는 전구, 전화기, 비행기, 영화, 라디오, TV등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물건들이 줄줄이 발명된다. 

타이프라이터도 이 시대에 태어났다. 이 시기에 미국과 유럽에서 '글쓰는 장치'로 출원된 특허만 2천 종이 넘는다. 

19세기 말에 개발된 다양한 형태의 "글쓰는 장치"들
① Rasmus Malling-Hansen의 타자기 Denmark, 1878   ② Dart Marking Machine 1899   ③ Ingersoll Typewriter, 1891   ④ Mignon Typewriter Model 2   ⑤ Odell Single Case and Double Case Typewriters 1890  
ⓒWikipedia ⓒThe Office Museum

크리스토퍼 숄스 Christopher
Shorles   ⓒWikipedia
그 많은 '글쓰는 장치'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크리스토퍼 숄스(Christopher Sholes)라는 사람이 만든 QWERTY키보드만이 백년 넘게 살아남아 훗날 우리 모두의 책상 위에 하나씩 놓여있는데, 이 QWERTY자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 건너편의 영어라고는 잘 쓰지도 않는 내 책상 위에까지 올라와 있는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것은 당시 급성장하던 미국의 기업들의 업무효율성 추구의 결과다. QWERTY자판은 타 입력장치와는 다르게 숙련을 통해서 영문을 빠르게 치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 설계한 것인데 그것이 전문 타이피스트들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QWERTY자판이 등장하기 이전 1880년대는 아직 이 글쓰는 장치들로 인쇄한 것 처럼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재미있게 여기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글쓰는 장치들은 영문 알파벳을 A에서 Z까지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눈에 작동법을 이해하기 쉬운 직관적인 방식이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숙련이 필요한 쿼티 자판이 성공한 이유는…

그러나 1886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알파벳이 뒤죽박죽 나열된 QWERTY자판이라는 것을 세상에 내 놓는데, 처음에 각 알파벳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막상 손에 익으면 영어 단어들을 가장 빠른 속도로 타이핑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특허출원시 제출했던 크리스토퍼 숄스의 QWERTY자판
도면. 지금의 자판배열과 똑같다. 1886
ⓒThe Office Museum
당시 갈수록 규모가 커지던 미국의 기업들은 업무를 세분화하고 효율을 높이는 와중에 문서작성에 있어서도 전문 타이피스트가 등장하게 되었고, 한번 고생해서 익히고 나면 당시의 어떤 장치보다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었던 이 QWERTY자판은 생산성으로 다른 방식들을 제치고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게 된다. 마치 피아니스트와 같이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몸에 익숙해지면 프로페셔널한 업무가 가능했던 것이다.

1895년 존슨앤존슨의 타이피스트
QWERTY방식의 레밍턴 타자기를
앞에 두고 있다.
ⓒwww.kilmerhouse.com
그렇게 수천종의 문자입력장치중 적자생존의 원리로 전 미국인에게 퍼져나간 이 QWERTY자판은 그 후로도 크게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지 않고 자연스레 영자 문화권의 표준이 되어갔다. 마치 자전거처럼 몸으로 익힌 기술은 쉽게 몸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한번 몸에 익힌 기술을 타이피스트들은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PC에서 디스켓 드라이버나 펑션키를 없애는 등 파괴적인 혁신을 즐겨하시던 잡스 형님께서도 이 QWERTY자판만은 건드리지 못했는데, 이는 수 억명의 사람들의 몸안에 이미 녹아들어있는 기술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이 자판을 쓰고 있는 이유는…

1980년대 IBM의 기업용 PC의 광고
ⓒThe Office Museum
크리스토퍼 숄스는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상상도 못했을 테지만, 백 년이 지난 1980년대 개인용 PC가 전세계의 사무실과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QWERTY자판은 별다른 저항없이 세계인의 책상위로 올라오게 된다. 

각국이 자연스럽게 이 QWERTY형태의 자판을 받아들이게 이유는 첫째로 PC를 움직이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영문기반이었기 때문에 영문자판은 필수적인 구성품이었고, 또 한편으론 각 문자문화권이 스스로 문자입력방식의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문자에 최적화된 방식을 확립시키기에는 디지털시대가 너무 급속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한글창제 당시의 세종과 최만리등과의 갈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문자와 관계된 것은 그 방식이 맞건 틀리건 일단 한번 달리기 시작한 열차는 그가 세종대왕이든 누구든 멈추기가 힘들다.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한글이 재미는 있으나 모든 학문이 한자로 쓰여져있는 상황에서 한글은 학문을 하기에 불필요한 문자라며, 국민들이 쓸데없는데에 시간을 쓰게 될까 걱정된다며 감히 왕이 하겠다는 반포에 반대하다가 해고를 당했다.)

한편, 영문자와 구조적으로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한자의 기계화 과정을 보면, 서로 다른 두 문자가 하나의 입력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알 수 있다.

한자와 영문자는 이름이 '문자'라는 것 외에는 어느 하나의 공통점도 없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문자체계다. 



하나도 닮지 않은 한자와 로마자

첫째, 로마자는 개별자소문자이고 한자는 조합문자이다. 즉 로마자의 한 단어가 한자의 한 글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 글자의 획수가 다르다.

둘째, 로마자는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이다.

셋째, 로마자는 가로로 쓰고 한자는 세로로 쓴다. 게다가 로마자는 왼쪽부터 쓰고 한자는 오른쪽부터 쓴다.  넷째, 로마자는 펜으로 쓰고 한자는 붓으로 쓴다. 

다섯째, 결정적으로 로마자는 26자이고 한자는 3만 여자다. 한자는 수 천년간 누군가에 의해 한 글자씩 추가가 되기도 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글자를 새로 조합하여 쓰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로 몇 자의 한자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조차도 힘든 문자이다. 

삼만자나 되는 한자를 가진 중국은…

26자를 가지고 옆으로 죽 늘어놓기만 하면 글이 되는 로마자, 한 글자에 최대 수 십개의 획을 가지는 총 3만자가 넘는 한자를 어떻게 동일한 방식으로 입력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한자를 치기 위한 타자기를 만들었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했을까. 3만자나 되는 한자를 타자기로 칠수는 있을까. 키 3만개를 늘어놓아야 하는가.

불행히도 린유탕(林語堂:임어당)이 시도했던 밍콰이(明快:명쾌) 타자기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런 식이었다.

슈안게 중문타자기 ⓒWikipedia
얼핏보면 인쇄기처럼 보이는 이 중국의 일반적인 타자기는 넓은 활판에 약 2천여자의 활자를 꼽아놓고 그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글자를 하나씩 찾아서 뽑아내어 치는 방식이다. 당연히 타이핑속도가 매우 느려서 숙련가도 분당 20~30여타 정도밖에 치지 못했고, 활판에 없는 글자는 옆의 보관함에서 찾아 집어넣고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하니 실제로는 더 느렸을 것이다. 활자인쇄 조판을 하는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슈안게 중문타자기의 작동모습 ⓒHraesvlgr / Youtube

1940년대 미국에 거주하며 영문타자기를 사용하던 중국의 문호 린유탕(임어당,林語堂)은 한자타자기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밍콰이(明快:명쾌)타자기라는 키보드형 타자기를 개발하려고 하였다.  

린유탕(임어당,林語堂) ⓒWikipedia
밍콰이 타자기는 총 72개의 키를 가지고 분해된 한자의 구성요소들을 상단36개, 하단 28개로 나누어 배치한 뒤, 상하단의 키를 동시에 누르는 식으로 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한자의 조합성을 구현하려고 애 쓴 것이다.

예를 들어, "易"자를 치고 싶을때 상단의 "日"키와 하단의 "而"키를 동시에 누르면 "易", "陽", "場"등의 글자가 뷰파인더에 후보로 등장하고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식이다. 

타자기처럼 생긴 최초의 한자타자기인 린유탕(林
語堂)의 밍콰이(明快) 타자기를 소개한 Modern
Mechanix지(Popular Science의 전신).1947
ⓒModern Mechanix
이 밍콰이 타자기로 칠 수 있는 완성형 한자의 수는 576개, 이를 조합하여 이론적으로 90,000개의 한자를 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세로쓰기가 기본인 한자와 달리 가로쓰기인 영문을 타이핑하기 위해서는 작성중에 종이를 90도 틀어서 다시 끼우는 과정도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전자산업이 발전한 시기가 아니어서 이 복잡한 구조를 모두 기계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는데, 당연히 이 이상적인 아이디어는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린유탕은 이 타자기를 상용화하기 위해서 당시 미국 최대의 타자기 회사중 하나였던 레밍턴사(E. Remington and Sons)에 시연을 한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그 자리에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다음날 이를 수정해서 다시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미 레밍턴이 실망을 한 뒤라 자리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후로 린유탕은 한자 타자기의 특허를 미국의 중소타자기 업체에 넘기고 타자기의 개발을 그만둔다. 그리고 그 타자기 업체도 결국은 그 기계를 제대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문자환경에선 ..
1940년대, 한글타자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공병우는 자신이 개발한 한글 타자기를 미국 언더우드사와 상용화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가 린유탕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문자의 구조에 따라서 두 개발의 성패가 갈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깨달았을 것이다. 

린유탕의 이 실패와 공병우의 성공은 문자와 기계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며, 문자가 다르면 이를 생성하는 구조와 인터페이스도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과 한자전용을 하는 일본은 QWERTY자판을 사용하는 한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20세기 후반부에 전자적 솔루션인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고, PC의 연산장치가 복잡한 연산도 빠르게 행할 수 있게 되면서 중국과 일본은 발음을 영문자로 입력하여 이를 자국문자로 변환하는 방식의 입력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로마자로 arigatou라고 치면 컴퓨터가 스스로 연산해서 ありがとう라고 뿌려주는 식이다. 물론 자국어를 바로 입력하는 방식도 혼용하고 있지만 속도나 효율성을 이유로 많은 사용자들은 이 『병음변환방식』을 사용한다. 

영미권의 문자환경에서 수 천대 일의 경쟁율을 뚫고 천하통일한 QWERTY방식도 다른 문자환경에서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글은 로마자와 닮았을까

한글의 기계화는 평탄했을까.

중국의 한자에 비하면 이 십여개의 자소를 가진 표음문자인 한글의 경우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 

중국의 한자가 약 3만자, 일본의 히라가나가 46자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최소 요소가 24자밖에 되지 않게 때문에(더 적게는 천지인처럼 3개 +a 정도까지도 축소가능하다.) 26자의 QWERTY자판에 모든 자소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심지어 획으로 쓰는 글씨처럼 7개로까지도 분해할 수 있으니 더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문 대문자를 입력하는데에 사용했던 Shift키로 쌍자음, 복모음 등도 구현할 수 있었으니 나름 그럴듯 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한글 기계화에 있어서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영문은 자소를 옆으로 늘어놓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글은 초,중,종성이 네모 틀안에 상하좌우로 다양하게 조합되어 한 글자를 만든다.

영문타이핑 방식을 그대로 응용한 …

최초의 한글타자기인 이원익의 타자기로 작성한 문장
ⓒ네이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병우박사가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만들기 수 십년 전인 1914년 미국 교포 이원익이 한글타자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원익은 단지 영문타자기의 자소 부품을 한글 자소로 바꿔서 한글타자기를 만들고자 했었는데, 때문에 영문에는 없는 한글의 받침을 구현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고, 결국 궁여지책으로 글씨를 90도 옆으로 눕혀 타이핑하는 방식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받침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글씨를 옆으로 눕힌 상태에서 타이핑 해야하며, 결과적으로 세로쓰기 밖에 할 수 없는 좀 이상한 타자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시도는 최초로 한글타자기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임과 동시에, 영문타자기라는 옷과 한글이라는 몸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건이기도 하다. 

역시 재미교포였던 김준성 역시 1920년대에 영문타자기를 베이스로 한글타자기 개발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받침'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받침을 옆으로 옮겨서 치는 소위 "한글 풀어쓰기 방식"의 타자기가 되어버린다. 

이 두 발명은 영문 타자기를 한글에 적용하려고 했던 사례로서, 결국 이 두가지 한글 타자방식은 문자 기계화에 대한 의미심장한 교훈만을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한글과 영문의 구조적 차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이가 공병우박사이다. 

공병우 ⓒ네이버
공병우는 자신의 병원에 환자로 방문했던 한글학자 이극로선생의 영향으로 한글의 과학성에 눈을 떴다고 하고, 일본의사들이 사용하던 영문타자기를 보고는 한글타자기의 개발에 도전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계전문가를 고용하고, 몇 달간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받침, 복모음, 쌍모음, 쌍자음등의 한글 특유의 과제를 모두 해결하고 게다가 속도까지 빠른 일명 "쌍초점"방식의 한글 타자기를 만들어낸다. 영문과 달리 자음과 모음이 정확히 분리되는 한글은 특성상 자음과 모음을 번갈아가며 타이핑을 하게 되는데, 빠른속도로 좌측의 자음과 우측의 모음을 연이어 칠때 자소막대기가 서로 맞붙어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막대의 위치에 약간의 차이를 두어 설계한 것이 쌍초점 방식이다. 

이는 자음과 모음이 규칙적으로 나오지 않는 영단어에서는 의미가 없는 기술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식을 통해 우리글을 제대로 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영문타자기를 능가하는 속도를 낼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의 휴전 회담때 각국 언어의 타자기가 회담장에서 회의록을 작성했는데, 한글타이프라이터가 가장 빨리 회의록을 작성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한글에만 있는 '받침'이 초성 중성과는 그 높이값이 다른 점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공병우는 받침용 자음을 별도로 한벌을 만들어 배치하게 되는데 바로 세벌식 한글 자판이다. 지금 우리가 PC에서 기본으로 사용하는 두벌식 자판과 달리 이 세벌식 자판은 숫자판의 영역까지 전부 한글자소로 채워져있고, 초성과 종성의 자음이 각기 다른 키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세벌식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서 논란이 많은데, 손에 익고 나면 타이핑이 더 빠른 장점과 최소한 기계적인 솔루션으로서는 필연적인 방식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스마트폰의 세벌식 자판. 좌우로 자음이 중복되어 놓여있는데 우측이 초성, 좌측이 종성이다.
ⓒ네이버 블로그 bbaek
우리나라가 문자에 있어서만큼은 운이 좋은 것은 맞다. 최소한 중국, 일본처럼 한글을 타이핑하기 위해 영문을 타이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미국 언더우드사에서 제작한 공병우의 세벌식타자기
ⓒ네이버


그럼에도 위의 이원익, 김준성, 공병우의 사례에서처럼 영문타자기의 구조를 완전히 변경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한글의 타이핑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 년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아직도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봐왔고, 마치 우리말에 대해서 한글이 그랬듯이 한글에 대해서도 무언가 필연적이고 더 어울리는 방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떤 문자환경에선 ..
만약에 디지털 혁명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고, 지구상에 문자란 한글밖에 없어서 문자의 입력방식이 한글에 최적화되게 처음부터 설계되었다면, 그 모습이 지금의 QWERTY자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한글이든 한자이든 어떤 문자이든, 신숙주의 논리의 연장에서 생각하면 그 문자를 쓰는 도구 역시 서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린유탕이나 공병우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즉 연산을 컴퓨터가 대신 해 줄 수 있으므로 복잡한 알고리즘까지도 구현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조금 더 자신의 문자에 최적화된 방식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방식이 스틱이든, 터치든, 제스춰이든, 입력 단위가 획 단위가 되든, 자소단위가 되든, 단어단위가 되든… 아마도 백 년정도 후 어느 날엔가는 한국사람들은 한글에 아주 잘 맞는 어떤 방식으로, 중국사람들은 한자에 아주 잘 맞는 어떤 방식으로 글씨를 쓰고 있지 않을까.



서기 414년의 상상


광개토대왕릉비, 만주 길림성

서기 414년의 어느 날, 만주 길림성의 한 들판에서 신하들은 선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을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모노리스처럼 생긴 거대한 돌에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주위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듯이 한자로 글을 세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 말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여 군데군데 이두문자(吏讀文字)를 사용하게 된다.

각국이 이 자판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1500여년이 지나면, 그들이 글을 빌어 쓰던 중국의 국민들이 한자를 쓰기 위해 로마자를 빌어 영문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또 그 중국으로부터 글을 빌어 우리말을 새기던 자신들의 후손들은 한글로 우리말을 바로 입력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이 시대 이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군가가 감히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참조

조선왕조실록 - 신숙주의 동국정운(1447년 9월 29일)
조선왕조실록 - 최만리의 반대상소와 세종과 최만리의 논쟁(1444년 2월 20일)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 돌베개)
세종대왕과 집현전(손보기,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공병우 자서전(공병우, 대원사)
공병우,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송현, 작은 씨앗)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네이버 캐스트 - 공병우(네이버)
Early Office Museum
Popular Science
100 Inventions That Shaped World History(Bill Yenne)
The first typewriter(Darryl Rehr)
Idle Idols: Lin Yutang(The Idler)
Wikipedia(Christopher Latham Sholes, Lin Yutang, Typewriter, Japanese Typewriter, Chinese Typewriter)




iF Communication Design Award 2012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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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Communication Design Award 2012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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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독일에 갔을때에 쿠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있다는 도이치 뮤지엄에 잠시 들렀습니다.
2012년 3월